요즘엔 인터넷으로 한국 신문을 거의 보지 않는다. 지난 대선때 여기저기 다니며 참 열심히도 봤는데, 한 인물에 대해 가졌던 관심이 실망의 수준을 넘어 역시나 정치에 대한 회의에까지 이르게되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신문을 봐도 포털에 뜨는 한줄 짜리 기사를 봐도 좋은 것보다는 안좋거나 쓸데없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집에서 위성티비로 연합뉴스가 나오는지라 간간히 한국소식은 접하고 있지만 그리고 다른 분들의 블로그를 통해서도 듣고는 있지만 역시나 안타깝고 황당한 소식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비단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라 미국뉴스나 CNN을 통해 알게 되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다 그런것 같다. 희노애락이 모두 합쳐진 게 인생이라는 말이 실감이 날 만큼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수 많은 일들이 다 그 한단어로 압축되는 것 같다.
세상에 정의가 있을까, 있다면 정의는 늘 승리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길게 보면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짧은 인생 가운데 겪게 되는 수많은 불합리와 부조리를 보면은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때로는 부당하고 억울한 경우를 당하기도 하고 내 자신이 남에게 그렇게 느끼게끔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꼭 다른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자연재해로 아니면 사고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삶이란 불공평한 것일 것이다. 10살짜리 큰 아들이 가끔 이런 질문을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왜 이렇게 불완전하게 만드셨는지, 왜 세상에 악을 허락하셨는지, 왜 아픔과 질병과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묻는다. 그럴때마다 내가 아는 지식으로 가볍게 대답을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만드신 에덴 동산은 그렇지 않았는데 인간의 죄가 그 평화를 깨뜨렸다고...
역시나 날카롭게 이어지는 질문들... 왜 사람들이 죄를 짓게 됐냐고... 사단이 꼬드겼다고... 왜 사단을 만드셨냐고... 원래는 착한 천사였는데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심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왜 그런 욕심 까지도 가질 수 없을만큼 착한 천사로 만들지 못했냐고, 왜 사단에 넘어갈만큼 약한 인간들을 만드셨냐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셨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데 왜 사단의 속마음과 인간의 약함을 허락하셨느냐고, 왜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지 못하셨냐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잘못하신 거 아니냐고... 언젠가는 그렇게 될거라고, 그 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천국을 만드시지 않으셨냐고... 사람을 너무 사랑하셔서, 사람들에게 자유 의지를 주셔서라는 궁색한 답변 끝에... 솔직히 말할 수 밖에 없다. 아빠도 잘 모르겠다고...
아이의 질문을 이제는 내가 하나님께 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어렵게 일을 처리하시느냐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꼭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드셨는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말씀으로 세상을 물바다로 만드신 것처럼, 말씀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만드실 수 있는 분이 왜 그렇게 고통스럽게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셔야 했는지... 알듯 모를듯 이어지는 내 마음 속의 대답들... 세상을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이 로봇이 아닌 자유의지를 가진 하나님과 같은 형상으로 만드셨기 때문에, 인간세계에 허락하신 질서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개입하시는 날이 바로 인류의 최후가 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올거라는... 그러니까 참고 인내하며 사랑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된다는... 여전히 고통받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어려움을 겪어도 좋은 날이 올꺼야 하며 참아야 한다는...?
모르겠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이러한 질문들이 의미가 없어진다. 한껏 분하고 억울하고 막 따지고 싶었는데 눈녹듯 녹아버린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는데 마치 모든 것을 다 이해한듯한 표정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전히 내 삶에는 무거움과 고통과 스트레스가 넘치지만 또 그런 것들을 지고 살아가게 된다. 갸우뚱한 표정으로 뭔가 속은 느낌이 있지만 그렇게 살게 된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랴하며 체념하고 사는 것하고는 다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서 내 작은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사는 것하고는 다르다. 따뜻한 사랑을 마음 속에 주신다. 아픈 사람을 보면 왜 아픈 사람을 만드셨냐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픈 마음을 주신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 역시 우리의 아픔을 아파하신 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기도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내 인생의 반쪽인 아내를 위해 기도한다. 주위에 허락하신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한다. 사는게...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즐거움도 모두가 다 그 분이 허락하신 것임을 그저 받아들인다. 여전히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그래도 기도한다. 사는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세상은 시끄럽고 불안하고 부정이 판치지만 그래도 기도한다. 나 하나가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기도한다. 결국에 키는 내가 아닌 우리가 아닌 사람이 아닌 그 분이 쥐고 계시기 때문이다. 사는게 여전히 힘들지라도 오늘 하루도 기도하며 살 것이다.
'낙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7월의 마지막 날에... (4) | 2008/07/31 |
|---|---|
| 바다를 꿈꾸며... (6) | 2008/07/20 |
| 사는게... (4) | 2008/06/03 |
| 비오는 아침에 (8) | 2008/05/14 |
| 야밤에... (4) | 2008/05/03 |
| 맘이 바쁘다 (6) | 2008/05/01 |
Trackback :: http://brandon419.tistory.com/trackback/82
-
Subject: 대답1: 인간의 고통에 대한 해답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다
Tracked from 쉐아르의 영적여행 2008/07/31 04:29 삭제"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면 세상에 왜 고통이 있을까?" 첫번째 질문이면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도록 만드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일단 "믿음사건: The Case for Faith"의 해당 내용을 읽었다. 질문에 대해 충분히 동감하면서,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곰곰히 되새기면서 읽었다. 그 대답은 어떻게 보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 것 같다. 하나..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것...
'사는게 여전히 힘들지라도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감사함으로 사는것'이겠죠....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비판하기보다 기도하며 감사해야겠지요...
머리로는 잘 아는데 그만큼 실천하기는 정말로 쉽진 않은 것 같아요, 늘 감사하며 기도하면서 사는거요. 꼭 그리스도인이어서가 아니라 지금 호흡하며 살고 있다는 자체가 그리고 내 주변에 많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가 감사할 일인데, 때론 내 안에 있는 문제들에 막혀서 감사가 안 나올 때가 있거든요...
적으신 글을 읽고 잊고 있던 예전 블로그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말씀하신데로 하나님 앞에 서면 따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요. 그런데 불합리한 세상을 보면 또 따지고 싶어지지요 ㅡ.ㅡ;;
이게 우리가 감당해야할 십자가인가... 생각해봅니다. 불합리한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요.
트랙백 감사하구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 저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